생리하는 사람에게 생긴 후천적 저글링 능력

 

저글링(Juggling)

“(둘 이상의) 물체를 교대로 공중으로 던지고(tossing) 잡으면서(catching)면서 허공에 유지시키는 것”

– 『미국문화유산사전(The American Heritage Dictionary)』

 

 

저글링이라는건 두 손으로 여러 개의 물건을 들고 돌리는 묘기이다. 어느 날 공중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갈면서, 생리하는 사람은 후천적으로 저글링 능력을 지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턱과 목 사이로 지갑을 잡고 핸드폰은 왼쪽 겨드랑이에 낀 채로 두 손으로 생리대를 말고 싸고 버리고 뜯고 붙이는 내 모습을 보면서.

 

생리대 저글링에서 중요한 건, 화장실에 있는 휴지통의 위치다. 아니, 휴지통의 유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다. 요즘 공중 화장실은 휴지통을 없애는게 추세다. 행정안전부는 2018년 1월 1일부로 악취 및 해충억제를 위해 휴지통 없애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생리대 전용 휴지통이 새로 생기는 자연스러운 역행(?) 현상이 발생하였다. 그래서 결국 여자 화장실 내부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냐면…

 

생리대 전용 휴지통이 앉은 자세에선 손 닿기 어려운 애매한 곳에 달리는 바람에, 겨드랑이 혹은 허벅지 위에 아슬아슬하게 올려 두었던 핸드폰이 속절없이 떨어져 타일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일이 발생됐다. 심지어 떨어진 핸드폰이 옆 칸까지 슬라이딩하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옆 칸에서 나온 사람은 ‘이 상황 익히 알지’ 하는 친절한 웃음을 지으며 휴대폰을 건네 준다. 이렇게 저글링 DNA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동질한 경험에 의한 유대감이…

 

 

공중화장실에 친절을 기대하지 말 것.

 

핸드폰 같은 개인적인 짐을 세면대에 두고 들어갈 수는 없다. 하지만 거치대가 없는 공중 화장실에서 볼 일보고 생리대까지 갈자고 하니 복잡 다단한 to do list에 입장 전부터 긴장이 된다.

 

거치대 있는 화장실은 백화점 혹은 대형마트에나 있지, 대부분의 공중화장실에는 기대하기 힘든 친절함이다. 거치대가 설령 있어도 너무 폭이 좁아서 생색만 내고 효용성은 떨어지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내가 화장실 안에서 저글링에 버금갈 만큼 부산스러워지는 것은 거치대가 없기 때문이 아니다. 손은 두 개밖에 없는데 저글링 해야 하는 공이 여러 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공중화장실에 친절함을 기대하지 말자, 공을 줄이자!

 

저글링해야하는 공의 개수는 3개 혹은 그 이상.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갈면서 저글링 해야 하는 공의 개수는 최소 3개. 핸드폰과 가방, 그리고 생리대다. 여기에 생리대 파우치까지 들고 다니면 최소 4개의 물건을 저글링 해야 하는 셈인데… 단 두 개 밖에 없는 내 손으로 3개에서 4개의 물건을 들고 좁은 화장실칸에서 사부작대기엔 여간 쉽지않다. 그럼 여기서 질문, 공을 줄이는 방법 중 우리가 한 번도 생각도 안해본 방법은 뭘까? 내가 들고 다니는 짐을 줄이는 방법은 너무 뻔하고 한편으로는 억울한 방법이다. 왜 항상 바뀜의 주체가 나 여야 하는 건지. 그럼 내 공을 줄이는 거 말고, 다른 공인 생리대에 들어가는 품을 줄이는 건? 그래, 이거다. 왜 아무도 생리대를 간편하게 버리고 사용할 수 있게끔 발전시킬 생각을 안했던 것인가!

아마 저글링의 난이도를 높이는데 있어 기존 생리대의 번거로운 사용법과 처리법이 그 중 7할을 차지할 것이다. 생리하는 사람이라면, 생리대를 갈기 위해 비좁은 화장실에서 거쳐야하는 번거로운 과정들이 있다.

포장지뜯기 – 비닐 떼기 – 속옷에 붙이기 – 사용한 생리대 말기 – 비닐/휴지로 감싸기 – 버리기

 

이런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하고 사용한 후에 휴지처럼 툭- 버리는 생리대라면 어떨까. 사용한 생리대를 말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나의 두 손에는 자유가 생길 것이며, 쓸데없이 저글링하며 허비하던 화장실에서의 시간을 더 생산적인 일에 사용할 수 있다. 그럼 여기서 또 질문, 내 두 손과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생겨먹은 생리대여야 하는 것 인가. 사실 이건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정화조와 하수처리의 과정을 통해 휴지처럼 물에서 풀어져야 하고, 동시에 생리 혈을 흡수 보관하며, 마지막으로는 비닐을 사용하지 않고도 방수를 해내야 한다는 것. 그러니까 생리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100% 펄프로 만들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방수층까지도 말이다. 그게 가능할까?

 

비좁던 화장실 칸에서 하던 저글링과의 안녕을 고한다.

 

그런 제품이 가능한지 아닌지는 직접 해보기까지는 모르는 법이었다. 그래서 시작했다. 생리하는 사람들의 저글링 시간을 줄이기 위해, 생리하는 것도 억울한데 내가 사용한 생리대의 비닐쓰레기로 환경에 부담을 준다는 사실에서도 벗어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우리의 몸과 지구에 이로운 제품을 만들기 위해서.

달나라에도 가는 시대인데, 기존에 있던 제품을 더 편리하고 합리적으로 바꾸는 것쯤이야 안될 리가 없다. 그리고 만들 수 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수분해성 생리대개발을 시작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 믿음은 건재하다. 내 저글링 공을 줄여줄 수 있는 생리대를 정말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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