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공은 아름다울 필요가 없잖아

드라마를 좋아한다.

 

유치원 때부터다. 그때 노랑반 여자 아이들 모두의 장래희망은 <지구 용사 벡터맨>의 레디아였다. 벡터맨들의 경호를 받는 예쁜 공주. 우리는 자주 역할놀이를 했다. 내성적인 나는 주로 작은 로봇 삐리삐리뽀를 담당했다. 노랑반의 공주님이었던 다솔이가 매번 레디아 역할을 했고 나는 몰래 그를 질투하다가 집으로 돌아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되니 좀더 본격적인 역할놀이가 시작됐다. 몇몇 친구들은 남자친구가 생겼다. 나머지 친구들과 나는 놀림을 받았다. 남자친구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그건 오히려 놀림의 결과였다. 피부의 색과 결, 눈의 크기, 청결의 정도와 같은 요소들이 조롱거리가 되었다. 그때 나는 생각했다. 피부가 까맣고 여드름이 많은 나는 남자친구를 만들 수 없을 거야.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드라마는 희망을 줬다. 여자 주인공은 놀림받고 무시받는 과거를 딛고 남자 주인공과 사랑에 빠졌다. 두 사람이 로맨틱한 관계의 정점을 찍을 때 꼭 등장하는 ‘환골탈태’ 씬. 머리가 짧았던 여자가 머리를 기르고, 안경을 쓰던 여자가 안경을 벗고, 화장을 하지 않던 여자가 화장을 하고, 바지를 입던 여자가 원피스를 입었다. “여자가 된” 여자를, 남자가 봤다. 취급이 아닌 대우를 했다. 나는 “여자가 된” 나를 상상하는 취미를 만들었다.

 

사춘기. 상황이 심각해졌다. 여드름은 날로 영역을 넓혀가고 몸에서는 털이 자랐다. 끔찍했다. 드라마 속 언니들은 부드럽고 매끈한 살을 가졌던데. 그래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거울을 보면 어떤 드라마에도 적절하지 않을 못생긴 내가 있었다. 친오빠는 내 얼굴을 가리키며 괴물이라고 말했다. 내 겨드랑이를 보면서는 구역질을 하는 시늉을 했다. 매일 매일.

 

고등학교 야자 시간에는 몰래 드라마를 봤다. 예쁘게 변신할 대학 생활을 꿈꿨고 사랑을 꿈꿨다. 언젠가부터 친구들과 나의 입술은 붉어져 있었다. 서로의 몸을 칭찬하는 일도 잦아졌다. 꾸밀줄 아는 친구들은 그들끼리 무리를 만들었다. 선생님들은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잘 치장된 얼굴로 잔소리를 했다. 유행하던 드라마에 나왔던 완판 블라우스를 입고.

 

드라마의 학습 효과 덕분일까. 이성애 질서가 지배하는 대학에서 나는 배운대로 했고 너무 쉽게 남자친구가 생겼다. 머리를 기르고 화장을 하고 짦은 치마를 입었다. 허리가 맞지 않으면 굶었다. 폭식을 한 날에는 목에 손가락을 넣고 게워냈다. 계절과 상관없이 털을 밀었고 눈썹도 다듬었다. 식사 후에는 늘 입술을 재정비했다. 드라마에서처럼 고백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집착하고 후회했다.

 

이상하게 충만하지가 않았다. 자주 괴로웠다. 섭식장애로 인한 역류성식도염, 장기간 피부약 복용에 따른 각종 부작용, 하이힐을 신은 후 생긴 족저근막염, 렌즈 착용 후 고질병이 된 결막염은 신체를 조금씩 망가뜨렸다. “언니, 이런 얘기는 없었잖아요.” 레디아 공주에게 따지고 싶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니 새로운 캐릭터들이 새로운 대답을 했다. “내 패션이고 스타일이야. 내 아름다움은 내가 결정해.” 얼마간은 이런 말들이 정말 위로가 됐다.

 

나는 나답게 예쁜 방법을 찾아냈지만 여전히 괴로웠다. 육체의 건강을 위협했던 병들보다 훨씬 치명적인 우울증이 찾아왔다. 연인이었던 남자들이 사랑했던 것은 나를 둘러싼 온갖 껍데기였단 사실을 실감하게 된 순간 깊은 절망에 빠졌다. 긴 상담과 사랑하는 친구들은 나를 살렸고, 나는 내 무의식 속 자기혐오의 뿌리를 드라마에서 찾았다. 그리고 인정했다. 그 드라마들의 남자 주인공은 여자 주인공을 사랑한 것이 아니다.

 

 

탈코르셋이라고 부르는 운동, 그 긴 싸움의 출발선에 서기까지 길고 긴 자기 학대의 날들을 보냈다. 어떻게든 가부장제가 주는 혜택을 놓치지 않기 위해. 공주로 불리기 위해. 여성으로 보여지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그간 남성들이 선택해온 보기들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으면서 철저히 그들의 대상이 되어 왔음을, 더불어 그 모습을 전시하며 다른 여성들을 또 다시 이 굴레 속에 합류시켰음을 늦게나마 자각한다.

 

오랜 시간 그리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기분은 분명 달콤했으나 이제 더는 나를 썩히고 싶지 않다. 사랑? 결점을 증식시키던 그것의 이름이 착취였음을 깨닫는다. 가끔은 반짝이는 것들이 손짓한다. 같이 아름다워지자고. 관성에 지지 말자. 나는 그때의 내가 보고 싶지 않다. 달라붙은 것들을 하나씩 뜯어내고 드디어 세상과 마주한다. 눈썹의 형태, 입술의 색깔, 머리카락의 길이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행복을 이뤄낼 것이다.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다. 진짜 여자의 드라마를.

 

“미친 세상을 그대로 물려주지 않을게. 아름답지 않은 왕이 돼.”

 


 

*어라운드바디 웹진에서는 여성의 몸과, 몸을 둘러싼 세상을 모두 이롭게 할 수 있는 좋은 글을 연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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